[ EX ] —
차게 가라앉은 먼지, 선명히 퍼져가는 혈흔, 따스히 흐릿해져 가는 빛. 몸 중앙을 정확히 꿰뚫은 비릿한 향의 금속. 음절에 높낮이가 없고, 나른하기만 했던 그 음성에 물먹은 듯한 떨림. 버베나의 장난꾸러기, 혹은 신의 완벽한 피조물이라고도 불렸으며, 까망이, 선배, 친구이기도 했던 그가 말하길. "너희랑 다같이 케이크 먹고 싶었어...."..... '유서는 써두시는 게 좋을 텐데요.... 다 작성하실 때까지, 기다릴게요.' '... 꼭 필요한 겁니까. ... 어떤 말을 적어야 할지도 모르겠고...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.'..... 의미가 있었습니다.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음을, 나의 내면에 있는 불씨가 꺼져가는 때에 깨달아버렸습니다. 왜— 왜 이제서야, 당신들에게 전할 말들이 무수히 떠오르는 걸까요...
[EX] 비선관로그²
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.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.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, 그 범위가 늘어나면 하나의 무리가 된다. 같은 신념을 가진 공동체는 방대해져, 믿음과 신앙심으로 직결되기도 한다. 천주교라든지, 개신교라든지, 바다 건너 존재하는 불교라든지. 그들에게 있어 생명의 최후는 '무' 로 돌아가고, '아버지' 의 곁으로 돌아가기도 하며, '영혼' 이 새로운 육체에 깃드는 것이다. '엠버', 너는 불길 속으로 사라진 그 아이와 무척 닮아있다. 내가 윤회를 믿는다면, 그건 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. 타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 하는 모습이 내게 오래 살아달라던 그 아이와 겹쳐 보여서, 너에게서 그 아이를 느껴서, 다시 한 번 만나 보고 싶어서..
[ EX ] 비선관로그¹
친구란,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.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. 가깝게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. 해당 정의에 부합하는 관계를 만든 건 20년 전, 버베나에 있는 교내 펜싱부 동급생들이었다. 그들과는 좋지 않게 헤어졌으나, 나는 그들을 여전히 친구라 생각하고 있다. 그러고 10년 후에, 결코 잘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같은 팀의 요원을 만났다. 도박과 변수를 좋아했고,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으며, 몸만 커버린 어린 아이. 나 또한 몸만 큰 어린아이였는지, 그를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. 새로 나온 디저트나 매운 파스타를 먹으러 가고, 술잔, 내지는 무기와 등을 맞대기도 했다. 가끔씩 오해로 속을 썩히고는 했지만,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. 빈 캔버스..